전기차는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주차장에서 등 뒤로 다가오는 전기차를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화들짝 놀란 적이 있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적어도 다가오기 전에 으르렁거리며 경고라도 해주었다. 전기차에게는 그런 예의가 없다. 소리 없이 다가와 어깨를 툭 치는 운명처럼. 그러고 보니 요즘 한국 자동차 시장에 일어난 일도 대체로 그렇게 조용히 다가왔다.

지난 9월, 국내에서 팔린 전기차 가운데 수입차가 57.2퍼센트를 차지했다. 국산과 수입을 나누어 집계한 이래 수입 전기차가 국산 전기차를 앞지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같은 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승용차는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만든 테슬라 모델Y였다. 한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자동차를 조립하던 나라에서, 이제 가장 많이 팔리는 차가 바다 건너에서 온다. 질주의 시대가 끝나자, 남의 차에 올라타는 시대가 온 것일까.

정부도 가만있지는 않았다. 올해 7월부터 제조·수입사의 기술 역량, 국내 공급망 기여도, 사후관리 능력을 평가해 보조금 자격을 주기로 했다. 35개 업체가 평가를 받아 27개가 선정되었고, 승용차 업체 중에서는 BYD만 빠졌다. 그런데 중국에서 만들어진 테슬라는 무사히 통과했다. 이 대목에서 공자라면 무어라 했을까.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다(名不正則言不順). 국산차를 돕겠다는 것인지, 중국차를 견제하겠다는 것인지, 사후관리가 부실한 회사를 거르겠다는 것인지. 정책의 이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으면, 정책이 하는 말도 순조롭지 않다. 소비자는 그저 묻는다. 그러니까 중국에서 온 차는 되는데, 중국에서 온 차는 안 된다는 말씀인가요?

물론 정책을 만드는 이들에게도 사정은 있을 것이다. 세금으로 주는 보조금이 국내 산업 생태계에 기여하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보조금이라는 도구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는 데 있다. 보조금은 소비자의 지갑을 잠시 가볍게 해줄 수는 있어도, 국산차의 배터리를 더 좋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진통제로 근육을 키울 수 없듯이.

게다가 그 진통제마저 바닥나고 있다. 올해 1~9월 전기차 판매가 작년보다 76.7퍼센트 늘어나는 바람에, 일부 지자체에서는 보조금이 이미 동났다.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는 6월 말에 끝났고, 전기차 개소세 감면 한도도 해마다 줄여 2029년에는 없애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사람들이 전기차를 사지 않을 때는 사라고 돈을 주더니, 막상 사기 시작하자 돈이 떨어진다. 손님을 부르려고 잔치를 열었는데, 손님이 몰려오자 음식이 동난 형국이다.

한국인은 오랫동안 자동차를 탈것이 아니라 증명의 수단으로 여겨왔다. 무엇을 타느냐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고 믿었고, 국산차를 수출하는 일은 나라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증명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전기차의 시대에 자동차는 점점 바퀴 달린 전자제품이 되어간다. 전자제품을 고를 때 사람들은 애국심보다 가성비를 먼저 따진다.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시민에게 애국을 요구하는 정책은 대개 시민보다 정책 입안자를 더 편하게 해줄 뿐이니까.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단 하나의 정답을 들고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의심해볼 일이다. 기성복처럼 입기만 하면 되는 해법은 세상에 없다. 다만 몇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보조금으로 시장의 문을 여닫기보다, 국산 전기차가 제 힘으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실력을 갖추게 하는 일이 더 긴요하다. 기준은 통과한 이와 통과하지 못한 이가 모두 납득할 수 있을 만큼 투명해야 한다. 그리고 해마다 바뀌는 혜택의 달력에 맞추어 차를 사야 하는 소비자의 피로를, 정책은 늘리지 말고 덜어주어야 한다.

전기차는 소리 없이 다가온다. 그러니 귀를 기울이는 대신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타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기 위하여. 목적지도 모른 채 질주하는 일이라면,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미 충분히 해보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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